조선족문단 거목 김학철을 아시나요

임종직전 치료 거부하고 금식 시작…"나 죽거던 부조금 받지말고 부고도 내지말라"

김학철

중국소수민족문학관에 세워진 조선족문단의 거목 김학철 선생의 동상

도문시 장안진 경내 생태문화관광구 룡가미원에 세워진 김학철 선생의 인생유언 기념비

◇ 중국과 북한, 조선족과 남한을 종횡무진한 강철 문호

민족정신이 희박한 이 즈음 김학철이란 한 사람을 생각해본다.

지금 만주땅에서 조선민족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는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1916∼2001)은 조선족을 대변하는 혁명투사이며 강철 같은 민족작가다.

그의 생활신조는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를 외면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였다. 그 기백과 기상은 그가 직접 지은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불린 '조선의용군 추도가'에도 스며들어 있다.


'사나운 비바람이 치는 길가에/다 못가고 쓰러진 너의 뜻을/이어서 이룰 것을 맹세하노니/진리의 그늘밑에 길이길이 잠들어라/불멸의 영령'


김학철(본명 홍성걸)은 1916년 북조선의 함경남도 원산에서 누룩 제조업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7세에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원산에서 제2공립보통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보성고등학교를 다녔으며, 1932년 17세에 빼앗긴 조국을 찾겠다는 포부를 품고 상해임시정부를 찾아 중국으로 들어왔다. 민족혁명당 상해특구에서 활동하다가 1933년 남경에서 민족혁명당에 입당, 테러리스트들의 집단인 행동대에 편입했으며, 1937년 중앙육군군관학교 (황포군관학교· 교장 장개석)에 입학하여 1년간 학습을 받고 이듬해 7월에 졸업한다. 이어 조선의용대, 중국공산당, 태항산항일근거지에서 팔로군의 전투에도 참가하는 한편 부대의 신문도 편집하고 직접 연극 극본도 쓴다.

1941년 12월 하북성 호가장전투에서 대퇴골관통상을 입고 일본군에게 포로가 되어 치안유지법위반죄란 판결을 받고 일본으로 압송된다. 1943년 4월 나가사키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0년에 미결가산 200일 언도를 받는다. 1945년 2월 감옥에서 다리 절단수술을 받았으며 그해 10월 6일 석방된 뒤 서울로 돌아와 공산당에 속하는 조선독립동맹 서울위원회 서울시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1946년 12월 조직에서 파견된 간호사 김혜원과 함께 북조선으로 건너간다. 처음에 '로동신문' 기자로 있다가 외금강휴양소 소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민족군대' 주필을 역임했다. 52년 12월 연길로 온 뒤 연변문학예술연합회 준비위원회 주임에 임명됐으나 반년 후 사직하고 전업작가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57년 반우파투쟁확대화 속에서 반동분자로 몰리게 된다. 조선공민이기에 우파분자가 아닌 반동분자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직과 노임마저 취소당하고 노동개조를 하면서 생활보조비 50원을 타게 된 게 전부였다. 64년부터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를 창작하기 시작하여 65년 5월에 완성한다. 66년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그 해 12월 반란파들에게 그 원고가 발견되어 감금 되며 이때부터 생활보조비도 취소된다.

하지만 80년 12월 연변 주법원은 '원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로 선고한다'고 선포한다. 이로써 83년 중국 국적을 갖는다. 85년 '김학철단편소설집'이 연변인민출판사, 다음해 장편소설 '격정시대'가 료녕민족출판사, 87년 6월 '김학철작품집'이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간된다. 89년 12월 중국공산당 당적이 회복됐으며, 94년에 한국 KBS로부터 '해외동포상'을 수상한다. 자서전인 '최후의 분대장'이 한국의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낸다.


◇ 부고도 거부했던 유언

그는 2001년 9월25일 오후 3시39분에 85세를 일기로 타계한다.

임종 직전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금식을 시작했다. "작가가 책을 보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하면 생명이 끝난 거야. 이제 이몸도 다한거야."

생전 소속단위인 연변작가협회 김학천 주석을 조용히 불러 유언을 남긴다. "사회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더는 련련하지 않고 깨끗이 떠나간다. 병원과 주사 절대 거부한다. 조용히 떠나게 해라."

그리고 단식 닷새째 되는 9월9일 아들 해양씨를 부른다.

"부고를 내지 말라. 고별식과 추도회를 일체 하지 말라. 일체 부조금을 받지 말라. 골회는 두만강 하류에 뿌리고 남은 것을 우편종이박스에 담아 두만강물에 띄워 고향 원산으로 가게하라."

그는 자상하게 후사처리까지 직접 챙겼다. 지팡이를 짚고서도 50여 성상 외다리 험난한 인생을 자신만만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김학철의 지팡이는 그 의미가 다르다. 새하얀 쇠파이프로 만든 보통의 지팡이긴 하지만, 그 지팡이는 작고한 김학철의 유물인 동시에 우리 민족의 문물이었던 것이다.


그의 집필실 2층문 왼켠 위쪽에는'한인막고문 김학철(閑人莫敲門 金學鐵)'이라고 써붙여져 있는데 '한가한 사람은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뜻이다.

조선족 문학평론가인 최삼룡의'김학철론'에서는 김학철 선생의 인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량쪽 겨드랑이에 쌍지팡이를 짚은 척각의 로인, 년령 75세, 키 180㎝, 수척한 몸매, 잔주름이 많기는 하지만 깨끗이 늙은 강파른 얼굴과 뾰족한 하관, 거기에 꾹 다문 입술과 한창 때의 그런 광채는 세월과 함께 사라졌으나 정기가 도는 사려 깊고 슬기가 넘치는 한쌍의 눈. 이 거인이 바로 오늘도 백발을 흩날리면서 붓대를 틀어쥐고 문학의 고봉으로 톺아 오르는 투사이며 작가인 김학철이다.'

중국소수민족문학관이 2009년 9월 15일 내몽골자치구 훅후호트시의 위치해 있는 내몽골사범대학 캠퍼스에서 성대히 개관되였는데 이곳 관사 정원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소수민족대표작가 10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중에 척각(隻脚)으로 송엽장을 짚고 하늘 향해 오연히 뻗쳐 서있는 김학철의 동상도 있다. 도문시 장안진 경내에 자리잡은 생태문화관광구로 이름높은 룡가미원에는 김학철 인생유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2005년 8월 5일에 중국 허베이성 타이항산 자락의 후자좡 마을 입구에 김학철문학비가 건립된다.

열화속에서 아홉번 태어나보고, 빙설속에서 아홉번 얼어보고, 피못속에서 아홉번 목욕해본 작가가 있다면 그가 곧 김학철일 것이다. 우리 민족의 불운한 역사 속에서 끝까지 민족정신을 등에 업고 힘겹게 살다간 위대한 별. 사람답게 살려거던 불의에 도전하라는 그의 좌우명이 지금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가치관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