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월 시인의 만주이야기]

막하행 열차안에서

아카데미 정명원 2010. 7. 16. 11:20

열차안서 우연히 만난 조선족 여인, 생전 마지막 꿈 뭔지 들어봤더니…

막하행 열차안에서 만난 조선족여인과 그녀의 딸.
막하행 열차안에서 만난 조선족여인과 그녀의 딸.
한 폭의 수채화같은 봇나무 삼림을 뚫고 북진하고 있는 열차의 행렬. 마치 붉은 머리의 거대한 지네 한 마리가 숲을 헤치고 기어가는 형상이다.
한 폭의 수채화같은 봇나무 삼림을 뚫고 북진하고 있는 열차의 행렬. 마치 붉은 머리의 거대한 지네 한 마리가 숲을 헤치고 기어가는 형상이다.
쟈그다치에서 막하 가는 삼림지대 어느 간이역사.
쟈그다치에서 막하 가는 삼림지대 어느 간이역사.
◇ 막하행 열차에 오르다

한번 생각해 보라.

'동북3성(東北三省·흑룡강·길림·요녕성)' 즉 만주 중심부라 할 수 있는 하얼빈에서 중국의 최북단인 막하까지 열차 소요시간은 20시간. 이 대단한 길을 고구려 제19대왕인 광개토대왕 이후 1600년쯤 내려온 역사의 시간 속에서 연개소문과 같은 날 태어난 내가 그 열차속에 있다니. 20시간이라면 한국에서는 상상밖의 시간이다. 하얼빈에서 쟈그다치까지도 무려 11시간 소요됐다. 쟈그다치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7시30분. 갈아타야 하는 시간의 여유는 30분 정도로 곧바로 막하행 열차를 갈아타야 했다. 쟈그다치역 출구를 빠져나와 다시 쟈그다치역 입구로 들어가 얼른 매표하고는 막하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11시간을 열차에 몸을 실어 북진해와 막하까지 다시 8시간 정도를 더 가야하니 절반 조금 넘은 거리를 온 셈이다. 막하행 열차는 지금까지의 열차 안보다는 달리 한적한 분위기였다. 첩첩산골로 들어설수록 승객도 뜸한 듯했다. 중국땅 최북단으로 향하는 만큼 인간세상과도 조금씩 멀어져간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 열차에서 만난 조선족 여인

이전의 열차 속에서는 쟈그다치 중국 여인이었는데 이번 열차 속에서는 조선족 여인으로 등장인물이 바뀌었다.

한국의 60~70년대식 올림머리를 한 퍽 용모에 신경을 쓴 조선족 중년 여성이었다. 이 여인이 먼저 우리 곁을 찾아와서 말문을 열었다. 한국말을 할 줄 아니까 우리도 반가웠다. 하얼빈에서부터 우리 일행을 보았다고 했다. '흑룡강 7천리를 가다'라는 우리가 들고 있는 깃발을 하얼빈에서부터 발견했다는 것이다. 좀 어투가 퉁명스럽기도 하면서 다정다감한 내가 "아줌마, 그럼 그때 아는 체하지 왜 안 했어요"라며 되물었다. 말도 매끄럽게 잘 하는 여인이었는데 개장집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일행을 보고 자기집에서 하루 묵고 가라고 한다. 아줌마의 인정은 대단했다.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겠다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잠시 어느 한적한 데 처박혀 이태백처럼 유유자적해 보고 싶었다. 아줌마는 성숙한 딸을 불러 우리에게 인사를 시켰는데 아줌마의 보신탕집 상호는 금강산 개장집. 점심 때만 영업을 하는데 벌목꾼들의 식당이다. 그러니 산간오지나 다름없는 곳인가 보다. 하루 수입은 800~1천 위안. 한달 순수익이 1만 위안 정도니 벌이가 좋다. 그래서 한국 한번 가는 것이 최대의 꿈이며, 돈벌어 놓은 것도 있으니 "오빠, 내 한국 좀 가게 불러 줘"라고 했다. 금세 나는 오빠가 된 것이다. 맘씨 고운 오빠가 됐다. 한국이 중국 조선족들에게도 최대의 인기종목처럼 선호되고 있다는 건 참으로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런 조선족 식당 아주머니도 한국 한번 가는 게 생전 최대의 꿈이라 하니 놀랍지 아니한가.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지만 지금은 계속 북진해야 하고 다시 내려올 때도 일정이 여의치 않을 것 같으니 다음 기회에 오면 꼭 그 개장집을 찾아가 며칠 묵겠다는 말을 남긴 채 신림역에서 한 여인과 헤어진다. 산간열차는 계속 북으로 북으로 봇나무 물결속을 뚫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초가을날 차창 밖 풍경은 한폭의 거대한 움직이는 수채화였다.


◇ 차창 밖 봇나무 풍경

삼림을 뚫고 북으로 북으로 치닫는 열차의 긴 행렬은 마치 붉은 머리를 단 거대한 지네 한 마리를 연상케 한다.

자작나무로 불리는 봇나무 행렬 때문에 더 장관이었다. 봇나무는 나무 줄기가 유난히 흰색을 띠고 있어 은사시나무 같이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상시켜 주었다. 초가을이라 아직 잎은 연녹색을 띠고 있지만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어 이파리들이 노랗게 물들면 더욱 환상적인 세계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았다. 나는 '한국의 콜럼버스'가 되어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만주땅 최북단으로 북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신께서 이런 대자연의 신비를 연출해내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봇나무는 만주 가는 곳마다 눈에 띄는 '특산품' 같았다. 만주 시인들도 봇나무를 예찬하는 시를 적었다. 중국 조선족 남영전 시인도 시집 '백의 넋'에서 봇나무를 노래했고 보면 예사로운 풍경의 나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바람의 채찍질에 등이 구불고 /눈보라 물어뜯어 옷이 찢겼네 /근육은 불거져서 돌뼈가 되고 /살가죽 갈라 터져 창상이 되고 /하늘은 너에게 공정치 못하건만 /너는 하냥 쓰러질 줄 몰라라 /돌바위에 뿌리박은 부락들이네 /자랑차게 머리 쳐들 산민들이네 /봇나무여 봇나무 /굴함없고 불멸하는 족속들이여

- 남영전의 詩 '봇나무' 전문

시인의 눈에 비친 봇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을 조선민족의 삶으로 읊은 것 같다.


◇ 여름 속 가을을 낚는 열차

이런 생각의 끈을 놓치지 않고 초가을의 햇살을 받으며, 이 세상과는 점점 멀어져 가는 기분이었다.

때로는 열차 안이 텅 비어지기도 했다. 한 객차 안에 열 명이 채 안 될 때도 있었다. 많은 간이역을 지나오며, 지나올 때마다 산골 소읍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붉은 벽돌로 쌓은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열을 지어 모여있는 풍경 그 자체가 사회주의 국가의 획일적인 모습으로 읽혔다. 열차가 삼림을 뚫고 들어갈수록 정차하는 소읍마다 통나무 더미와 목재소가 눈에 띄었다. 끝없는 삼림을 뚫고 열차는 좌우로 방향을 여러 번 틀면서 지나간다. 광개토대왕이 넘었다는 대흥안령산맥이 차창 왼쪽에서 나타났다. 함께 동행한 백민 시인은 "막하 가는 길은 참으로 절경이다. 우수수 나뭇잎이 바람에 떨어지는 소리를 열차 안에서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지금 이곳은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려 떨어진다. 그만큼 가을이 빨리 찾아오는 것 같다. 열차가 막하에 가까울수록 사람들도 멀어지고 여름도 멀어진다"면서 기찬 표현을 했다. 그의 여행노트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장장 22시간의 기차여행, 언제 또 내가 이런 긴 열차여행을 해 볼 수 있을까? 철로변의 나무를 흔들며 기차가 간다. 북으로 북으로, 북으로 기차가 간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