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동성

곡부(曲阜),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아카데미 정명원 2009. 10. 18. 19:14


  
 

 
곡부는 유교가 처음 발생한 지역으로서 중국 고대의 유명한 현자와 교육자, 정치가를 배출한 지역이다.

학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재미있는 가게들이 많이 생겨서 곡부는 중국의 대표적인

문화와 역사의 도시로 불린다.

이 곳에서는 공자와 관련된 학당이나 사당을 구경할 수 있다.

곡부의 역사는 바로 중국 유학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공부(孔府 콩푸)와 공묘(孔庙 콩먀오)와 공림(孔林 콩린)에서는

이제 고인이 된 많은 유학자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공자는 BC 551년 춘추 전국 시대에 곡부에서 동쪽으로 약 60km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후들에게 통치 이념을 전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공자가 죽은 후 BC 479년에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모아서 책을 내었는데

이렇게 해서 고전 <논어>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공부와 공묘는 이전에는 공씨 가문의 가족들과 제후들만 입장이 가능했고

일반인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성지였다.

공씨 가문은 그들만의 가정 의례와 법칙을 만들고 공부 안에서

이를 엄격히 준수할 것을 명했다.

그들의 법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제국의 의례와 법규로 확대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묘와 공부가 지속적으로 확장 되었는데

그래도 현재의 20% 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곡부 전역에는 송과 명•청의 건축 양식이 다양하게 반영되었으며,

 도시가 전체적으로 청결하여 그 역사적인 중요함에 가치를 더한다.

다양한 건축 양식을 통해 여행자를 중국의 다양한 시대로 데려다 줄 것이다.

아름다운 빨간색 건물들, 노란 타일로 덮인 지붕도 보이고 뾰족한 처마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남문인 만인궁장(万仞宫墙 완런꿍챵)은 공묘의 시작을 알리는 조형물이다,

이 문은 오랜 시간을 버텨낸 성벽을 상기시키는데 대형 철재로 만들어 졌고,

화려하게 장식된 빨간 나무문은 웅장함을 자랑한다.

문을 넘어서면 광장에는 시장이 열리는데

다양한 음식, 값싼 보석들을 파는 행상이 자리를 잡고있으며

여행객으로 붐벼서 생동감이 있다.

일단 사원으로 들어가면 시장의 소음이 쥐 죽은 듯 사라지는데

사원의 고요는 여행자들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고대의 학자들을 불러들인다.

고요한 뜰 가운데에는 철받침대로 지탱되는 말라 비트러진 소나무가 서 있고,

수 많은 기둥이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공손하게 떠 받들고 있다.

과거에 황제들이 공자의 학덕을 추앙하는 뜻으로 아름답게 조각된 기둥을 헌납했는데,

그 중에서 중요한 기둥은 사원의 남쪽과 중앙에 위치한다.

이 기둥은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 모양의 석조로 받쳐진다.
만약 중국어를 읽을 수 없는 여행자라면 곡부를 소개하는 영어 안내 책자를 보기 바란다.

 이 책자 안에는 중요한 기둥들에 대해 설명되어 있고 사원 전체를 여행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공묘의 중앙에는 규문각(奎文阁 꾸이원꺼)이 있는데 이곳에서 가장 높고 멋있는 건물이다.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세 개의 전당에는 기와로 덮힌 3 단 지붕이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에 공씨 집안의 부와 영화에 대해서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건물은 순전히 공자의 어록인 논어를 보관하기 위해 1504년에 지어졌다.

공자 제자들의 거주지로도 이용되었던 규문각은 13개의 크고 작은 건물들로 이우러져 있는데

이 곳의 기둥들은 황제와 귀족들이 헌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으로 만든 비석이 있는 금비정(金碑亭 찐뻬이팅)은 공묘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이다.

대성문(大成门 따청먼)을 지나서 사원의 북부로 가면 세 개의 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의 바로 안쪽에는 청나라 황제가 헌사한 향나무가 있고,

정원의 대부분의 나무는 유학자들이 심어 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행단(杏坛 씽탄)은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제자들과 학문적인 이야기를 주고 받던 강단이다.

행단은 중국과 중국인의 의식 세계에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각지에서 여행 온 사람들은 곡부를 여행하다가 하나의 유적지를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고

사진 촬영을 하는데 열중할 것이다.

그만큼 이 곳은 중국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은 한 지역에서 적어도 30분 가량을 지체할 것이다.

행단 뒤에는 공묘의 주요 전당인 대성전(大成殿 따청띠엔)이 있다.

대성전은 원래 자금성의 태화전 보다 더 큰 규모로 지어졌지만

황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작게 다시 고쳐야 했다.

청나라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대성전은 건물 전체에 윤이 나며

2층으로 만들어진 지붕에 남쪽에는 웅장하게 조각된 6m 높이의 석기둥이 있다.

한 때 황제가 이 건물의 아름다움을 시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빨간 지붕 위에 황색의 실크천을 덮었다고도 한다. 대성전 내부에는

공자의 초상이 있는데 중국인들은 그 엄숙한 인상을 하고 있는 초상을 보면서

그에 대한 경의를 표해왔다.

공자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동양 사상의 중심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사원의 동쪽 출구로 빠져 나오면 또 다른 광장에 행상들이 갖가지 물건을 팔고 있다.
남쪽으로는 종이 모셔진 종루(钟楼 쭝루)가 있고 동쪽에는 북이 있는 고루가 있다.
종루의 남쪽에는 아름다운 아치형의 건물인 궐리방( 阙里坊 췌리팡)이 보인다.

 이 곳에서는 황제들은 저녁 무렵에 나와 산책을 즐겼다.
공묘의 북쪽 끝에는 공자와 공자의 후손들이 살던 공부(孔府)가 있는데,

명나라 때 만들어 졌고 청나라에 걸쳐 건물이 확장되었다.

공부의 내부에는 현란하게 장식되고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사원이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공부의 가장 큰 매력은 중국 고대 귀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공부의 남쪽은 공식적인 일을 수행하는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손님을 맞이하는 기능과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기능을 겸한다.

세 갈래로 나누어진 길을 따라 가다 보면 하나의 중심 홀과 여러 작업실이 나온다.

동쪽 길로 가면 농부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 공씨 가문 사람들이 피난했던 탑이 하나 있다.

공부는 공씨 가문 사람들의 일상 생활의 공간이면서도 피난처이기도 하였고 동시에 보물이기도 했다.

공부의 중앙은 가족들이 거주했던 공간이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가다 보면 저명한 학자들에게 학문을 배우며 큰 소리로

 낭송하는 공씨 가문의 자제들과 그들을 수호하던 수 백 명의 하인들을 상상해 보게 된다.

공부는 정원이 특히 아름답다.

맑은 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꽃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현자들은

이 정원에서 많은 학문적인 영감을 받고 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공묘와 공부에서는 바쁘게 뛰어 다니면서 여행하기 보다는

반나절의 충분히 비워두는 편이 좋다. 현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명상과 여백이 깃드는 여행을 즐겨보자.

공부의 북쪽으로 택시를 타고 약 10분 정도 가거나 혹은 20분 정도 걸으면 공림(孔林)이 나온다.

이 지역은 아름다운 정원이자 사원 그리고 역사의 공동 묘지인 셈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묘는 말그대로 광활하다. 대략 2km 남짓 숲이 이어지고

공씨 가문의 묘가 모여 있다.

심지어는 현대에도 공씨 가문의 자손들은 저명한 선조들을 뒤따르고자 이곳에 와서 묻히기도 한다.
조용한 숲 안에는 몇개의 건물과 아름다운 아치형의 복도가 있고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이 나무들은 공씨 가문 사람들이 엄격하게 선별하여 씨를 뿌리고 정성껏 가꾼 것이라고 한다.

강한 인상의 암석들을 보면서 이 숲을 걷다 보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공자와 그의 아들•손자의 무덤은 숲의 남쪽 부분 문 가까이에 모여 있는데,

공자가 죽자 제자들은 스승의 무덤을 지키고자 스승의 묘 가까이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다른 자손들의 무덤은 구석 구석에 흩어져 있다.

RMB10원으로 자전거를 빌려 이 곳을 여행하는 것도 좋다.

물론 자전거 대여 가격은 사전에 흥정해야 한다.

버스를 타고 이 지역을 둘러 보는 편이 더 빠르고 편하지만 공림은 코스에서 제외된다.

버스 여행 요금은 RMB 10원이며 약 15분 내지 20분이 소요된다.

조금 더 여유를 즐기고 싶으면 자신의 튼튼한 두 발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제일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자전거 여행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다리를 너무 혹사시키지 않으면서도 공묘의 고요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흥미 있는 곳 중에 하나는 곡부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육예성(六艺城 리우이청)이다.

이 곳에는 공자의 생활상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고, 과거의 곡부 마을을 재현해 놓은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육예성은 공묘와 공부에서 택시로 약 5분 정도만 가면 나온다.